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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야기

지금 그대로의 선생님이 좋아요.

by 햇살사람 2019. 10. 12.

학생상담질문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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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부터 학부모 상담 주간이다.

1학기와 2학기 두번 상담이 이루어지는데, 이번 2학기 상담은 조금 느즈막히 진행된다.

이 아이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 인생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머물게 되는 이 생각.

 

같은 아이들을 연임하는 것은 1분의 생각만으로도 못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였는데

작년에 상황상 연임을 하면서 부장이 되었었다.

그런데 의외로, 같은 아이들을 연달아 맡는다는 사실이 어떤 것인지 느꼈다.

재작년에 내 반이었던 아이들.

그리고 작년에 내 반이 된 아이들.

그리고 내가 크게 돌봐야 할 다른 반 아이들.. 내 반이었지만 다른 반이 된 아이들이 포함된.

 

그저 더 예뻤다.

더 아는 사이니까, 더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마음.

 

작년에는 학년 부장으로 매 달 프로젝트를 꾸려 계획서, 진행, 반성..으로 학기 당 프로젝트를 세 개씩 진행했고,

부진했던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 모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이를 위해 매 달 마지막 금요일 명현 음악의 날을 만들어 운동장에서 공연을 벌였다.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음악업무를 맡으면서 마음속에 꿈꾸던 모습.

운동장 한 쪽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흐르고 한 쪽에서 축구를 차는 아이들이 있는.

음악이 배경이 되고, 삶이 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면서 참 행복하기도 했었지.

 

무리했던 탓일까.

연말에는 병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1년을 잘 마무리하고, 2월에 수술을 받고 이어서 병가와 병휴직으로 한 학기를 쉬었다.

 

또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여차저차하여 연임이 이어졌다. 연연임이라고 해야할까.

같은 아이들을 3년 만나는 것이지만, 병가에 들어가 타인의 손에 아이들을 맡기고 한 학기 학교에서 멀어져 지냈다.

두어번 서류처리나 볼일이 있어 학교에 들렸었는데, 수술 후 의기소침하고 우울했던 나에게 와락 달려와 반가워하며 언제 학교에 오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었었다.

생각보다 큰 마음들을 받으며 감사했다.

 

그리고 9월 2일 복직.

가정에 충실하고 내 몸과 건강을 돌보던 한 학기를 뒤로 하고, 학교를 향하면서 불안했다.

내 상태가 이렇게 근무를 해도 괜찮을지.

내가 학교에 나가도 둘째 딸이 잘 적응하고 다닐 수 있을지.. 여러가지 걱정이 버무려졌지만

막상 교단에 섰을 때 나를 바라보는 스물 두명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행복했다.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동료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지금 부담스럽겠지만, 그래도 또 선생님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지내다보면 행복감이 올거라고.

그 말씀이 마음에 각인되었다.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말.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인정해주시는 말씀이 감사했다. 그리고 믿었다, 나 자신을.

 

며칠 정신없었지만 한 주가 지나니, 마치 6개월의 공백이 없는 것처럼 잘 지낼 수 있었다.

 

내가 그만큼 잘 적응하고 즐겁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 나와 3년째 만나고 있는.

 

오늘은 이 아이들에게 다음주 상담을 위한 설문조사를 했다.

교우관계 파악, 방과 후 시간 파악, 미래나 과거에 대한 이미지나 기억, 지금 현재 마음의 비중들을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질문들 틈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두개 넣었다.

 

* 나는 우리 선생님이 이런 것은 좋다.’ 라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 나는 선생님이 이렇게 해주시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점이나 고쳤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이 두문장.

사실 두렵기도 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솔직해서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로인해 내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될까...

무슨 용기인지 그래도 그냥 나눠주었다.

나의 성장을 위해서 아이들의 말을 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6교시 수업 후, 출장 후 저녁7시 반에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상담설문지를 읽는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해준 말들이 너무 행복해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선생님 지금이 좋아요.

-선생님은 우리 말을 잘 들어주세요.

-선생님은 우리를 잘 아세요.

-선생님은 지금 그대로 너무 좋아요. 짱!

-선생님 완벽해요....

 

완벽. 완벽이라니.

어떤 존재든 가장 듣고 싶은 말, 지금 그대로의 너가 좋아. 잘 하고 있어.

이 말들을 이 어린 12살 꼬마들이 나에게 쏟아부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보다 소중한 선물이 나에게 있을까.

이것보다 감사한 일이 최근에 언제 있었지....

 

 

금요일 밤.

주말을 앞두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지는 밤이었다.

너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너무 궁금하다고.

너희랑 헤어질 생각을 하면 나는 벌써 조금 마음 한쪽이 싸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런 말들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어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기에 조금은 쑥쓰럽고. 조금은 부끄럽겠지만,

월요일에는 내 마음을 조금 더 표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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