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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by 햇살사람 2019. 11. 17.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저/ 한겨레출판

 

1983년 프로야구가 창단되면서,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구단도 창단되었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주인공은 삼미의 어린이 팬클럽이 가질 수 있는 스포츠백을 득템하면서 친구 조성훈과 함께 특별한 조금은 특별한 팬클럽 회원이된다.

영화 슈퍼맨을 모티프 로고 또한 슈퍼맨인 삼미 슈퍼스타즈.

슈퍼맨이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내 인생을 구해줄 것만 같은 삼미슈퍼스타즈.

그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패배를 이어갈 때쯤 두 소년은 인생의 뒷 맛을 느끼고, 우울함이 깊어지는 청소년기를 보낸다.

결국 삼미팀은 사라지고,

서울대를 나오고 직장에 충!성! 하느라 아내와 이혼까지 감행했어도 결국 구조조정 당한 주인공.

그때부터 삼미의 야구가 그냥 프로야구가 아니었음을. 그것은 인생이었음을 알게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페이지 틈에 실린 그 시절의 감성이 떠올라 마음이 얼얼했다.

어린 시절,

젊은 엄마가 끓여온 김치찌개와 송송 썰어온 오이와 고추장 세트, 그리고 큰 마음 먹고 해주시던 소세지반찬이 올려진 동그란 밥상을 앞에 두고 우리는 뉴스를 보거나 프로야구를 보면서 밥을 먹곤 했다.

그 시절의 아빠와 그 시절의 엄마와 그 시절의 세숫대야와 그 시절의 장판과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던 찢어진 벽지 같은 것들이 송두리째 그리워지는 글이었다, 이 책.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파를 콧구멍에 끼운 사람처럼 아버지의 눈주위가 붉어지는 것을.

 

청춘은 고장난 탱크와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런 모습으로

내일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  거듭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며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 - 실은 그래서 기적이다.

 

눈부신 5월의 금요일 오후였고, 창을 건너온 봄볕이 -스윽스윽, 내 등에 붓칠을 하듯 여러 가닥의 햇살을 피부 위에 짜서 문지르고 있었다. 봄볕이 한 폭의 훌륭한 초현실주의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랬다, 생각하면 나에게도 왕년이 있었다. 촌스런 별 무늬-그래도 그 순간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단 잔인한 사실. 대저 그것이 클라이맥스였다니. 우리의 삶은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쉽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혼을 하고 실직을 당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인생을 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자 하나씩, 하나씩 할 일들이 생겨났다. 우선 그 날 이후 나는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고, 어느새 산보를 하며 하늘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늘을 즐겨가면서 나는 점점 낙천적인 인간으로 변해갔다.

 

마닐라삼과도 같았던 그의 고막을 실크처럼 부드럽게 만들어 놓은 것은 그의 아내였을까. 아니면 그날 밤, 우리가 따라놓은 맥주를 - 그 찰나에도 좀더 익게 만들며 나의 등 뒤를 서늘하게 지나치던 그 한줄기 세월이었을까.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 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ㅈ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시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강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플레이 볼.

조성훈이 소리쳤다.

재구성된 지구의 맑고 푸른 하늘을 지나

공이 날아왔다.

만삭의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저 두근거림 앞에서

이제 나는

저 공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

 

플레이 볼이다.


어쩜 페이지페이지마다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입에 딱딱 붙는 표현들이 있을까.

 

한겨레상 수상을 할만한 작품이다.

지인이 강추했던 책.

그리고 연수에서 강사가 인생의 책이라고 흘리며 이야기했던 책.

왜 그러는지 알겠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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